장: 생일 하면 선물을 주고받는 재미도 있는데요. 기억에 남는 선물 있으신가요?
이: 저는 지금의 반려인과 만난 바로 일주일 뒤가 생일이었는데요. 생각지도 못하게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오시더라고요. 멀지 않은 곳에서 책도 사고, 컵도 사고, 저녁도 먹고 그렇게 소박하게 보낸 날이 가장 좋은 선물로 기억됩니다. 편지도 좋고요. 편지는 한 통만 받아도 프리 패스죠. 다만 편지’만’ 빠지면 괜한 서운함에 심통이 납니다. 친구와 함께 보내게 되는 생일이더라도 끼니 때우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굳이 뭘 사야 한다는 강박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인사말마저도 그날 하루만큼은 커다랗게 와닿으니까요.
장: 손으로 쓴 편지에는 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 “축하해” 같은 일상적인 문장만 쓰더라도 평범하지 않은 감동이 몰려옵니다. 물론, 생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지만요. 저 또한 비싸고 큰 물건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비싸고 큰 물건은 내 돈으로 사야 만족스럽다는 생각) 값보다는 이 선물을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주었는지가 크게 와닿더라고요.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참 고민을 많이 하고 결정했다고 느껴진 선물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해가 지날수록 단순 물질적인 감동은 옅어지고 인사마저 정말 고마운 시기가 왔습니다.
이: 이 고마운 마음을 선물로 보답해야 할 때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서프라이즈 선물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평소 취향을 잘 알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선물로 맞추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더라고요. 매번 반려인의 선물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사람의 푸념입니다.
장: 전 “필요한 것은 스스로 사자” 주의인데 가끔 찾아오는 서프라이즈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 그 사람의 선물로 인해 필요한 것이 되더라고요. 막상 친구의 생일을 서프라이즈로 준비해야 할 때는 부담이 돼서 인지, 꼭 필요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인지 ‘갖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이: 요즘은 상대가 제 돈 주고 사기 아까워하는 것을 선물로 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생일은 화려해 보이고 싶어서인지 왠지 큰 선물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바람도 안 게 되잖아요? 생일 선물 주기 좋은 리스트 같은 것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장: 저는 쌀쌀한 계절에 접어들면 핸드크림이나 립밤을 주로 선물합니다. 선물할 사이면 그 사람과 최소한의 식사와 몇 번의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필요한 것들을 기억할 수 있더라고요. 책을 좋아하면 교보문고 상품권이나 피부에 관심이 많으면 올리브영 상품권처럼요.
이: 저는 왜인지 상품권 숫자 = 내 마음처럼 보일까 봐서 적나라한 기분에 한 번은 망설입니다. 막상 제가 받으면 사용하기도 좋을 텐데 말이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나 판이합니다. 가장 많이 받았던 선물과 무난한 선물의 베스트는 먹는 것 그리고 부동의 1위 핸드크림입니다. 최소 2년간 아무리 써도 동나지 않을 핸드크림들이 쌓여있으니 말이죠. 핸드크림이 작고 휴대성도 좋을뿐더러 어떤 브랜드이더라도 과하지 않은 금액이라 작은 정성처럼 잘 느껴집니다. 선물하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지만 꾹-참고 있습니다. 그들도 저처럼 쌓여있을 테니까요. 대체재로는 향이나 향초 요즘은 핸드워시가 좋겠네요. 이러나저러나 내 취향을 고려해서 준 선물은 마냥 좋은 것 같습니다. 저를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리면서 골라냈을 테니 말이죠.
최근에는 주방용품 선물만 받게 돼서 마치 주방장이라도 된 느낌인데요. 어느 날 찍은 사진 한 장 속에 한 친구가 준 선물만 여기저기 곳곳에 찍혀 있더군요. 그걸 발견한 뒤로는 한 카테고리로 올인해서 선물해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장난감이면 장난감, 술이면 술, 컵이면 컵처럼요. 나중에 저처럼 오싹하도록 그 친구가 준 선물만 쓰고 있을 테니까요. 꽤 괜찮은 작전 같습니다.
장: 서로의 마음이 가까운 곳에 닿아있는 친구분인 가봅니다. 저는 한 사람에게만은 아니지만 선물 받은 것을 사용하거나 볼 때마다 선물 준 그들이 생각납니다. 나도 이렇게 유용한 선물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선물은 마음이 가장 중요한지라 금액과 크기 등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축하 연락은 언제, 누가 보내든 참 좋더라고요. 생각해 준거니까요.
이: 매일 아침 바쁜 일상에서도 ‘친구의 생일을 확인해보세요!’를 클릭하고서 나를 기억해 주는 일이 가장 정성스러운 선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