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문: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반대로, “이런 친구들은 멀리하게 되더라”는 유형이 있을까요?
이진영: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인간의 뇌가 ‘나 자신’이라고 인식해서 통제하고 싶어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면서 더욱 함부로 대하게 된다고요. 그래서 통제받는 기분이 들거나, 반대로 내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려고 할 땐 거리를 멀리 둡니다. 그런 유형은 서로에게 잘 맞지 않는 에너지라는 것을 이제는 알거든요.
또 슬픈 일에는 정해진 격려와 위로를 해줄 수 있지만,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이가 더욱 어렵다 생각합니다.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받는 느낌이 들지 못할 때는 ‘이 친구와는 이런 부분은 잘 안되는구나. 아쉽다.’라고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제가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들지 않아 정리하게 된 친구도 있습니다. 만약 이 친구의 기쁜 일에 내가 진실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을까? 자문해보는 거죠. 소중한 친구에게만큼은 억지웃음을 부리고 싶지 않거든요.
장희문: 멀리하게 될 친구도 이미 멀어지고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요.
말씀하신 “이런 친구들은 멀리하게 되더라”에 대해 어느 부분 공감이 됩니다. 저는 좋지 않은 기분을 암묵적으로 느꼈는지 자연스레 서로 연락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아주 가끔 만나지만 진영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통제’를 하려는 친구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저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강요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거든요. 잘못된 행위를 했다면 제가 고치겠으나, 자신의 입맛에 저를 바꾸려고 하는 힘에 밀려 보니 그 친구에게서 이미 멀어져 있더라고요.
특별한 계기로 멀어진 친구도 있는데요.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는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아침에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날 아침에 복붙(복사-붙이기)한 단체 문자로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답장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네요. 아마 결혼하여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친구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사소한 것에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슬픈 일과 좋은 일에 진심으로 위로와 축하를 해주었을 때 상대가 “고맙지만 이런 것으로 난 기분이 풀리지 않을 거야”라며 제 위로를 받아칠 때는 섭섭하고 “괜히 했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진심 어린 위로와 축하에서 멀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이진영: 비단 친구 관계뿐 아니라 사소하고 서운한 일들이 쌓여서 풀지 못하고 멀어지게 되는 일이 다반사인걸요. “고맙지만 이런 걸로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상처가 되네요. 진심으로 전한 말에 어떻게 느끼면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에 누군가에게 같은 위로를 하고 싶더라도 그 친구와 같을까 봐 선뜻 호의를 베풀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장희문: 가깝거나 멀어진 친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때 감동했다”혹은 “이때 실망했다”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요.
이진영: 오히려 가깝지 않은 친구가 계속해서 저를 특별히 여겨주면 그 고마운 마음이 어느새 소중한 친구로 자리 잡더라고요. 실망 했다라... 그런 말을 들은 적 있거든요. 사람을 만나고 집에 갈 때 기분이 좋은 사람과, 좋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요.
저를 각별히 생각해 준 친구가 있었는데, 여태껏 쌓아 온 신뢰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상황에서 저라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생각해 보고 행동한다더라고요.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매사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부담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어떤 날에는 매번 저를 무시하는 듯한 말과 태도를 보여줬는데, 그 친구의 두 가지 모습이 어긋나고 상충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정말 의미 있는 존재인 건지 아니면 필요에 의한 존재인지 말이죠. 매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던 의구심이 피로감으로 돌아와 점차 멀리하게 됐습니다. 저에게도 특별했던 친구라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떠올려보지만, 여전할 것 같아 역시나 잘 정리한 것 같네요.
희문님은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가요?
장희문: 감동 포인트는 모두 다르겠지만, ‘의외의 친구, 의외의 행동’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코로나 확진으로 모든 식사를 배달로 해결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음료수를 참 마시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최소 주문 금액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대뜸 배달 어플리케이션 쿠폰을 보내줬습니다.
“이 친구가 왜?, 지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정말 고마웠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친하게 지낸 사이지만 뜻밖이었거든요. 무심코 흘린 말을 잡아서 기억해 준게 고맙더라고요. 제가 어떠한 일에도 크게 감동하지 않는 성격인데 오랜만에 여운 짙게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일로, 대구에서 거주할 때 서울을 놀러 가게 되면 “서울까지 왔는데 내가 안 재워주면 잘못된 것 같아”라며 심야버스를 태워서 자기 집에 재워주던 친구도 있습니다. 가정집인데 말이죠. 그러고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 날이면 서울역까지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집이 노원인데 말이죠. 그 친구가 긴 취준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취업했을 때 “이제 네 생일 선물 사줄 수 있는 능력이 돼서 다행이다”라며 선물을 보내줬습니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이런 사사롭고 따뜻한 정이 생각납니다. 물론 친구는 다 까먹었더라고요. 곧 결혼할 것 같은데, 축의금 잘 모으고 있습니다.
실망한 경우라면, 위에서 말씀드린 ‘무단 모바일 청첩장’과 저에게 관련된 지식을 묻는 척하다가 자신의 승진을 위해 저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했던 (수상 경력이 필요하여) 친구가 있네요. 그 말 듣자마자 묻지도 않고 바로 차단했습니다. 저를 친구가 아닌 ‘하나의 인맥’이라고 생각했겠지요. 항상 자신이 필요할 때만 연락했으니까요.
이진영: 이렇게 고마운 친구와 손절한 친구들을 떠올려보니, 가까워진 새로운 친구들도 떠오르고 멀어진 친구들도 떠오릅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 고향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 ‘순간에 손 뻗으면 닿을 정도의 사람들만 신경을 쓰고 먼 사람을 잘 못 챙기고 있구나’라고 저를 질책하게 됩니다.
우리는 친구라는 존재와 함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새로운 영향과 좋은 에너지를 받기도 하잖아요. 전에 반려인의 지인을 만났을 때 말씀하신 얘기가 있는데요. 넉넉히 나이를 먹고서 친구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마냥 지나가 버린 추억 회상이나 팍팍한 삶 이야기나 늘어놓지 않고 조금은 더 생산적인 대화들이 오가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다 같이 잘 사는 게 참 중요하다고요. 곁에 있는 모든 친구가 듬뿍 행복하고 잘되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즐거운 이야기만 할 수 있게요.
장희문: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저도 누군가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정을 제대로 주었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친구분의 이야기가 와닿네요. 행복한 에너지는 퍼진다고 하잖아요? 한 번씩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그 추억보다 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현재를 함께 살아가면 좋겠네요. 내일 만나도, 10년 뒤에 만나도 서로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진영: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격없이 만나 농담 따먹기나 할 수 있는 만남이 줄어들어 씁쓸하기만 합니다.
부르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친구처럼 말이죠.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만큼 복된 것도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소중한 친구들이 다 고향에 있어서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의 삶에서도 마음 한 편이 헛헛한 시간들을 보낼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한데 모여 살면 참 좋겠습니다.
장희문: 주로 연인에게 쓰는 말이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게 있죠. 반대로 읽으면 “가까울수록 더 가까워진다”가 될 것 같습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이진영: 친구에 관한 재미난 속담 공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