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문: 음악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진영씨 기준으로 2022년 잘 들었다 하는 음악 또는 여러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이진영: 올해 최고의 것들…. 먼저 음악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정리해서 보여주잖아요. 저는 후쿠이료의 재즈를 많이 들었더라고요.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고요. 올 상반기부터 꽤 많이 들었는데 편안한 연주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글을 쓰기에도 그냥 흘려듣기에도 무난한 분위기의 곡들입니다. 재즈 이야기가 나오니 국내에서는 만동 밴드를 참 좋아하거든요. 올해 활동량이 많으신 것 같아 반갑기도 한 와중에 나만 알고 싶은 아티스트라 더 유명해질까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연초의 파티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라이브의 흥은 스트리밍과 비교도 안 되더군요. ‘300명 앞에서’, ‘두 번 일하게 해서 미안해’를 좋아합니다.
장희문: 저는 스포티파이를 사용하는데 출퇴근과 산책 때만 사용하고, 유튜브를 중점으로 듣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올해 많이 들었던 노래는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와 드레이크의 ‘Champagne Poetry’, ‘Certified Lover Boy’ 앨범을 반복하여 들었습니다. 음악 관련 일을 하다 보니 ‘곡’을 듣기보다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곡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앨범을 구성했는지, 순서는 어떠한지 느껴보는 맛도 있더라고요.
추가로 출근길 루틴이 생겼는데 최신 음악 칸에 들어가 업데이트된 노래를 모두 들어보는 것입니다. 최근 노래의 경향이 어떤지 분석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최신 음악’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알게 된 가수가 해리 스타일스입니다. 노래가 좋아 가수를 찾아보니 제가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과 무대 위(자신의 본업)의 모습이 같은 사람일 것 같더라고요. 또, 한참 짧은 노래를 좋아하던 시기였기에 2분 40초대의 노래는 매력적입니다.
이진영: 곡보다는 앨범을 통째로 들으시는 분들이 더러 있더라고요. 저도 그러한 편이고요. 가수와 대표곡이 좋으면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앨범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됩니다. 최신 업데이트 노래를 다 들어보신다니 편견이 없으신 것 같아 좋네요. 이제는 모래알 속 진주를 찾는 모험보다는 최근 재생한 음악만 트는 단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채광과 버스 안에서 들을 곡 하나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통제해 보자는 마음 때문에요. 때때로 앱에서 자동 추천해 주는 ‘나만의 MIX’ 또는 ‘이 가수와 비슷한 곡’을 즐겨 듣습니다.
음악 외에도 올해 즐겨보았다. 하는 콘텐츠가 있으신지요?
장희문: 올해는 무척이나 영화, 영상 쪽을 많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쏙 드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OTT(영화, 드라마)에서 뽑자면 <그 해 우리는>(감정 소비 없는 드라마를 오랜만에 봤습니다.)이 압도적이며, 그나마 뽑자면 영화 <소공녀(2018)>(잔잔하며 꿈꾸는 연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로 넘어가면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 영상의 조회수 3.8억 중에 제가 1,000은 기여했을 것 같네요. 진영씨는 OTT 계열이 아니더라도 2022년 TOP에 <나는 솔로>, <환승 연애>가 들어가지 않을까요?
이진영: 그럼요. 매주 일희일비하면서 지난 경험들이 떠오르는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겪기 어려운 감정(결혼함)이라 더욱 이입하면서 봤네요.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 소비성 콘텐츠를 많이 즐겼던 것 같습니다. 국내 드라마로는 티빙 <몸값>, 넷플릭스 <수리남>을 꼽겠습니다. 각각의 스토리는 다르지만 빠른 전개가 좋았습니다. 대중들의 숏 콘텐츠 열광에 최근 나오는 작품들의 스토리라인이나 전개에서 빠른 속도를 체감하게 됩니다. 킬링타임으로는 좋은 소재들입니다.
영화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을 상당히 재밌게 봤고요. 멀티 유니버스에서 빛나는 모성애를 다룹니다. 몰입도가 좋고 스토리, 연기, 작품성 어느 한 곳 빠지지 않았던 웰메이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나더 라운드(2022)> 매즈 미켈슨 주연의 영화죠. 중년의 아저씨들이 모여 알코올 농도에 관한 연구를 시도해 보는 스토린데요. 생활연기로 꽤 유쾌하지만, 중년 남성들만이 겪고 있는 고충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편하게 주말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라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많은 분이 봤던 헤어질 결심은 여름에 바빠서 보지 못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장희문: 잔잔한 영화부터 전개가 빠른 영화까지 스펙트럼이 넓으시군요. 추천해 주신 어나더 라운드는 현재 시청 중인데 알코올이 적정한 곳에서 사용되지 않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살짝 몰입도가 깨지긴 한 상태이긴 하지만 조금 이따 다시 주행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매해 자신의 상태, 기분에 따라서 즐기는 콘텐츠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평소 누아르, 범죄물을 상당히 즐겨보고 좋아합니다만 올해의 제가 본 콘텐츠들을 보면 몰입하면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감정 소비 (스스로 이입되지 않아도 되는)가 없는 것들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공통된 것이 없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네요.
그렇다면 올해 소비한 것 중에 이것은 “정말 알차다! 잘 샀다”라는 것이 있을까요?
저는 몇 개월을 고민한 미러리스 카메라, 티켓팅하여 겨우 산 편한 청바지가 있습니다. 정적인 취미에 동적인 새로움을 추가하기 위해 카메라를 구매했습니다. 또 평소 하나의 브랜드를 파기보다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마침 경험해 보고 싶었던 브랜드의 청바지를 몇 번의 도전 끝에 겨우 구매했습니다. 그 결과 아주 편하고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 바지가 되었습니다. (검수할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기에 20초 안에 품절됨)
이진영: 예전에는 주말 오후에 보는 잔잔한 일본 드라마를 즐겼는데, 올해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네요. 어쩌면 저도 숏 콘텐츠에 적응돼 버린 걸지도요. 올해의 최고의 소비는 저렴하게 구입한 2002년식 EPSON 디지털카메라를 꼽고 싶습니다. 평소에는 필름 카메라를 즐겨 쓰는 편인데 디지털식으로 가벼운 해상도를 느낄 수 있어서 스냅용으로 애용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2년여간 벼르다가 산 자작나무 선반으로 거실 한편을 책장으로 채웠는데요. 거실을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게 돼서 큰 만족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로써 TV와의 이별을 선포했네요.
장희문: 금액이 크든 작든 과는 상관없이 사고 싶었던 것을 샀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이소에서 손톱깎이를 사더라도 필요한 것이라면 정말 만족스럽지요. 저는 다른 이에게 주는 것보다 저에게 인색하게 소비하기에 좋은 소비가 이뤄졌을 때 참 좋습니다.
이진영: 얼마 전에 반려인과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자동차에 관해서 말입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차가 우연히도 같아서요. 최근 연말 시즌이라 여러 곳에서 프로모션도 하고 가격별, 브랜드별, 성능별로 선택지가 참 많은데 아무리 비싼 차를 저렴하게 살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 차’가 있다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하면서요. (’그 차’는 실용성 위주의 차량) 자신이 매긴 가치의 순위에 부합한다면 지나면서 산 물건인들 주운 물건들 어떻겠습니까? 실제로 저는 분리수거 날 버려진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라는 책을 주워서 잘 읽고 모셔두고 있습니다. 어찌 됐건 나만 좋으면 되는걸요.
장희문: 맞습니다. 신기하게도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필요하게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필요한 것에 왜 ‘필요’라는 단어를 붙이는지 알게 됩니다.
이진영: 구매를 합리화하기 위해 때로는 ‘필요’라는 타당성이 요구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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