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춥지도 무덥지도 않아 입맛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계절입니다. 어쩐지 시원한 음식도 따뜻한 국물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장: 사람마다 입맛이 없는 시기가 있지요. 주로 가을-겨울에 살이 찐다고 하고, 여름에는 무더위에 지쳐 입맛까지 잃어버린다고 하죠. 입맛이 없을 때와 밥 먹기 귀찮을 때는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음식들을 머릿속으로 로테이션 해 봅니다. 웬만하면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이: 그럴 때마다 찾게 되는 소울푸드있으신가요? ‘이것만 먹으면 힘이 난다!’라는 것들요.
장: 밥 먹기 귀찮을 때와 지칠 때 먹는 영역이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귀찮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에 빠르고, 가깝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상관없이 집 근처에 위치한 ‘햄버거’를 먹습니다. 그게 <버거킹>이라 약 4년째 애용하고 있습니다. 선호하는 메뉴는 없고 제로 콜라만 지켜지면 됩니다.
후자는 ‘꼭’에 초점이 붙기에 소울푸드라 볼 수 있습니다. 지칠 때 힘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첫 번째로는 <떡볶이>입니다. 감기에 걸려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텐션이 좋아지는 날에도, 하루 종일 무기력한 날에도 떡볶이만 한 것이 없습니다. 약간의 매콤함이 들어가면 먹기 전보다 에너지가 생깁니다. 다만, 떡볶이가 맛이 없다면… 역효과가 아주 큽니다. 그런 날이면 바로 다음 날이라도 맛있는 떡볶이를 먹어야 합니다.
이: ‘귀찮을 때’와 ‘지칠 때’ 먹는 음식의 영역이 다르군요. 생기 없는 하루의 선물 같은 존재가 될 테니 둘 다 소울푸드라 칭해봐도 되겠습니다.
제 소울푸드는 <KFC>인데요. 공교롭게도 ‘햄버거’라는 메뉴는 같네요. 어릴 때 집에서 100m쯤 거리에 KFC가 있었거든요. 주 1~2회는 꼭 먹었기에 주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5살이 돼서야 이사를 갔으니 그 동네 KFC의 역사를 보고 자란 셈이죠. 그때는 ‘마이팩’이라고 치킨 2조각과 감자튀김과 콜라 세트가 있었는데, 나중에 ‘스마트 초이스’로 이름이 바뀌고 콜라는 빠지더군요. 지금은 잘 모르지만, 여전히 치킨세트와 징거버거를 즐깁니다. 가끔 비스킷도 먹고요. 늘 포장해 와서 먹던 버릇이 있어 그런지 집에서 편안하게 먹는 것이 힐링의 시간입니다. 반드시 혼자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거든요.
하나 더 꼽자면 ‘감자튀김’인데 감자튀김만 있으면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사람이 햄버거 먹을 때 감자튀김 남기는 꼴을 절대 못 보죠.
장: 대구의 KFC라니 흔치 않은 케세권에 거주하고 계셨군요. KFC는 다니던 고등학교 옆에 있었지만, 그때는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자주 먹지 못하고, 성인이 돼서야 한 번씩 갔던 기억이 있네요. 말씀 중에 ‘포장해서 집에서 먹어본 버릇’은 저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매장에서 큰 음악 소리와 함께 먹는 것보다 집으로 포장해와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여유로운 한 끼 식사가 좋습니다. 감자튀김이 남으면 꼭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튀겨드신다는 걸 듣고, 알뜰하신 줄 알았지만 튀김에 대한 사랑이 상당하셨군요. 저는 아무리 소울푸드라도 최대한 다음 날까지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처음 개봉했을 때의 감동이 많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이라고 하니, 제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도 초등학교 때를 추억해야 하겠네요. 분식 포장마차가 길거리에 떡하니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좋아하는 떡볶이 스타일이 정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든 먹을 수 있고, 모든 맛이 담겨있고,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이죠. 윗집은 아주 고전적인 쌀떡과 어묵, 아랫집은 살짝 매콤 달달한 밀떡과 어묵, 순대, 만두 등 사이드 메뉴가 즐비했죠. 전 아랫집의 단골 중 단골이었는데요. 윗집은 떡의 수, 어묵 수, 계란 추가 여부에 따라 떡볶이의 양이 달라지거든요. 그런 것을 계산하기 귀찮기도 하고 그때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상경 후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떡볶이집을 많이 가봤는데요. 광진구에 위치한 떡볶이집 한 군데가 그때 윗집의 맛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95% 이상이요. 그래서인지 광진구 떡볶이집이 “맛있다”라는 느낌보다 “그때가 생각난다”가 더 강합니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이 정도면…”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장님이 서울에 계셨으면 오래오래 장사하셨을 터라면서 말이죠.
이: 학교 앞 떡볶이집은 몇 걸음 간격마다 있으니 골라 다니는 맛이 있습니다. 하교 루틴 중 하나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200원짜리 김밥 튀김 1개를 먼저 먹고, 500원짜리 컵볶이 하나를 받아 들고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거였거든요. 그나저나 김밥 튀김 아시나요? 양념치킨 같은 소스에 찍어 먹는 건데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장: 김밥 튀김 알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 먹기는 하지만 계란 튀김 같달까요? 말씀대로 김밥 튀김을 모르는 분이 많더라고요. 경상도만의 음식인지는 몰라도요. 컵볶이를 참 좋아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300원 하다가 500원으로 오르고, 10대 후반-20대 초반이 되니 컵볶이는 사라지고 1~2천 원씩 포장해서 먹던 기억이 납니다. 저와 성장을 함께한 친구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유튜브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즐겨보는데요. 때마침 소울푸드의 유래에 대해서 나온 편이 있더라고요. 백종원씨가 옥수수빵과 치킨을 먹으면서 알려주시더라고요. 모든 것이 비슷하겠지만 음식은 스토리를 알고 나면 맛이 달라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 내용입니다.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현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용어를 '위안 음식'이라는 순화어로 명명했다.” 제목처럼 ‘지친 영혼을 달래줄 단짝 음식’이 맞습니다.
이: Soul+Food가 합쳐져 주로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는군요. 그렇다면 지금도 손에 꼽는 소울푸드 <떡볶이> 집이 있으신가요? 생각나면 꼭 그 집엘 간다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