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럼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F이기도 한 걸까요? P가 즉흥적인 이유는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라 하거든요.
장: MBTI를 보면 각각의 수치마다 이 조합이 맞나? 싶은 게 많습니다. FP는 감정에 충실한 이라면 FJ는 감정을 표출하지만 그걸 조절할 줄 안다? 이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또, ST가 냉철하고 객관적인 면이 있는데 SP라면 참 재밌습니다. 냉철하지만 계획과 감정에 있어서는 즉흥적이기 때문이죠. 계획적이지 못한 이를 보면 “P라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사실은 아무 생각 없습니다. 그러려니 합니다.•
이: TP라는 지인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논리적인데 즉흥적인 P다? 그럼 말만 하고 제 맘대로 하냐고요. 저는 J이지만 반려인은 저를 선택적 J라고 부릅니다. 제 일정을 미루는데 관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즉흥적이거든요. 그럴 때 말하죠. ‘내 범주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J야말로 경지에 오른 것이다.’ •웃자고 한 얘기•
장: 선택적 J 재밌네요. 흔히 49:51에 걸쳐있는 친구들이 자주 쓰는 말이죠.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있나요? “나는 일할 때는 J야”, “일할 때는 T야” 본인들의 ‘일 잘함’을 MBTI로 표현하는 모습이라 재밌습니다. 그럴 때 말하죠 “그때만 바뀌는 건 없어. 그리고 일할 때 그렇게 안 하면 일을 할 수 없지”
이: 논리적이고 계획형이라면 일을 잘할까? J인 저로서는 일할 때 체계를 따져들지만, 수동적이라는 단점도 있어서 때로는 P처럼 주어진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성향도 필요한 것 같거든요. 활발한 직무에서 E를 찾는 것처럼요. 그래서 ’일 잘함’이라는 것을 특정 유형(T 또는 J)으로 말하는 선택적인 표현은 지극히 편향적인 판단인 것 같습니다.
장: T의 논리에 부정적이고, J의 계획력이 융통성 없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갑자기 TJ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들이 보는 TJ가 멋있거나 일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일할 때는’이라는 전제를 붙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J/P가 나와서 생각이 나네요. P인 친구들이 더러 “J는 융통성이 없지 않아?”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J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냉혈한처럼 보일까요? 딱딱해 보일까요? 자신의 MBTI와 반대되는 사람과의 만남은 다른 면이 많아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이: 이 자리에 P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J의 계획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융통성이 발휘되기 어려울 수 있죠.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위해 돌진할 테니 이것저것 둘러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요. 그런 면에서 융통성 없단 말에 공감합니다. 말 그대로 답답한 거죠. 그럼에도 J는 아랑곳할 성격이 아닙니다. 묵묵히 돌진할 뿐이죠. 또 같은 J라도 다른 면모가 있으니까요. 보통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하시나요?
장: 어떤 것을 계획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사소한 것부터 내일 입을 옷, 먹을 음식, 이동한다면 이동 루트, 시간, 일어날 시간, 일어나서 할 루틴을 다 정하고 잠에 듭니다. 한 명의 친구가 아닌 그보다 많은 친구를 함께 만난다면 모두가 만나기 간편하고, 헤어지기도 쉬운 곳으로 정하고 나서 대략적인 시간대별로 갈 장소와 먹을 음식 등을 모두 짜놓습니다. •당연히 거리와 날씨에 따라 가방, 소지품, 보조배터리의 유무, 우산의 크기는 기본으로 정함•예전에는 이런 계획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하다 보니 오히려 여행 스케줄 짜는 것이 부담돼 “누가 대신해줘, 그대로 따라갈게”이고 싶습니다. 정작 여행을 가게 되면 동행자가 놓칠 것 같은 짐까지 모두 챙기고, 여기서 여기까지 몇 km / 몇 분, 효율적인 루트 등을 챙기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몇 년 전 제주도를 간 적이 있는데 자기 전 친구와 간단히 야식을 먹고 “내일은 진짜 계획없이 다녀야지. 어디 갈지 찾아보기만하고”라는 말을 하자마자 친구가 “그건 즉흥적인 게 아니지 않을까?”라고 하더라고요. 대충 어디 갈 지만 찾자는 건데 말이죠. 그 친구는 INFP였습니다.
이: J의 계획성은 어쩌면 강박의 루트로 가기 가장 쉬운 유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에서 내일 먹을 점심, 저녁 등을 생각하는 저를 보면 ‘먹보인가? 미식가 납셨네.’ 싶기도 하지만 J여서 그런 것도 있겠네요. 한때는 철두철미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본래 민감한 성격이기도 하기에 여행을 가게 되면 어디서 몇 번을 타고 몇 분이 걸려 도착하는지에 대한 루트를 시간표로 메모하기도 했죠. 그러다 20살 때 내일로 여행 •한 때 유행하던 국내 기차여행•을 일주일 정도 가게 되었는데 함께 가는 친구가 저만 따라오고 여행 중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 기간 대체로 즐거웠던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렇게 저를 돌아볼 때쯤, 지금 떠올려 보면 P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연애에서도 제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마저도요. 그때 깨달았죠.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다.’ 어쩌면 애처로운 강박의 길 앞에서 누군가가 ‘너 조금은 여유가 뭔지 느껴보고 살아라.’하고 돌려 보낸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도 제 성격은 못 버리기 때문에 큰 것은 정해 두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또 일부러 내려놓기를 연습하기도 하죠. 희문님 말처럼 계획대로 하면서도 스트레스받는 모순되는 모습들이 있거든요.
장: 좋은 말씀이네요. 요즘 들어 인연을 만나게 된다면 제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두렵지 않게 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P처럼요. 즉흥 여행을 가본 것이 딱 2번인데 모두 P와 함께 간 것이더라고요. “왜 이렇게 여행을 급하게 가지?”라는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준비하고 갔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가장 최근의 일로 얼마 전 북적거리는 바닷가 옆에 제주의 이태원이라 떠올릴 만한 다이빙 명소가 있더라고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첨벙첨벙하기 바쁜 와중에 I인 저희 부부로서는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수십 명이 다이빙하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아이들은 엄마가 그만 뛰라고 할 때까지 뛰어내리기 바쁜 걸 보니 저도 한 번쯤은 뛰어내려 보고 싶더군요. 다이빙의 시원함과 일상에서 탈출하는 어떤 쾌감 같은 것이 느껴질까 하고요.
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반려인•수영 못함•이 앞서 3번이나 다이빙을 선보여 준 덕분에 마침내 저도 뛰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뛰고 나서 보니 여기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속으로는 나처럼 응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뛰어봐! 잘 뛰나? 멋지다! 나도 한번 뛰어볼까?’ 등등요. 처음 뛰어보는 사람도 있고, 몇 번 뛰어내려 보고 재밌어서 다양한 자세를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어떤 행태가 비로소 나를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인도하는 거죠. 꼭 철두철미하게 움직여야 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여행은 다른 성향과 경험해 보는 것도 큰 추억을 주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