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TV 앞 테이블 그리고 소파’가 거실 인테리어의 국룰이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왔지만, 작업실을 대체할 공간의 활용도를 위해 TV는 방으로 쫓겨나고, 거실은 서재와 같은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 와 집다운 집으로서 내가 쉼과 편안함을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하면 바로 ‘TV 앞 소파’입니다. 밥 먹고 누워서 보다가 또 잠들고 그런 날들이요.
장: 아이러니한 면모가 많죠. ‘예쁜 집’과 ‘편안한 집’의 공존이라 하니 예전의 TV에서 노홍철씨와 김영철씨가 카페처럼 집을 꾸미다가 집이 가져야 할 휴식이라는 요소가 빠져서 어려웠다고 하셨네요. 김영철씨는 등받이 없이 소파를 집에 사용하다 보니 꼿꼿이 선 등이 계속 아팠다며… 말이죠. 댁을 구경해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시도네요.
저는 아직 원룸 생활이라 마음껏 집을 꾸밀 수는 없습니다. 풀옵션인 탓이겠지요. 드넓은 공간과 분리를 할 수 있는 집이라면 그 공간마다의 역할을 정확히 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전통적으로 거실은 TV를 보며 밥을 먹는 공간이지만 TV 시청에 가까운 공간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다 나누는 거죠. 원룸은 한 공간에서 모든 행동이 이뤄져야 하기에 분리에 대한 욕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또 집에서 집다운 편안함을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떠올려 보면 시디즈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쪽잠 청할 때, 몸은 불편하지만, 조금의 리프레시로 편안해집니다. 20분에서 30분 잠시 일을 접어두고 정식으로 취하는 잠이 아니기에 양심의 가책도 없고요.
이: 일반적이지 않은 편안함이네요. 불편한 의자에 쪽잠을 청하는 것에서 오는 집다운 편안함이라..
자취생활을 하다가 부모님 댁에 들르면 거부할 수 없는 편안함에 온갖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기도 하잖아요. 마음껏 꺼내 덮을 수 있는 꽃무늬 이불들, 널브러진 잡동사니들, 푹 꺼진 소파와 구성이 하나도 맞지 않는 식기들까지요. 작지만 오래된 소품들이 주는 묘한 안온함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던 것들 오랜 시간 봐왔던 것들이 주는 정감 때문에 언제나 빈티지 소품의 인기가 끊이지 않는가 싶기도 하고요. 풀옵션 원룸을 떠난다면 하고 싶으신 인테리어가 있으신가요? 블랙&화이트나 미드센추리 처럼요.
장: 꿈꾸는 집이 따로 없듯, 꿈꾸고 있는 인테리어도 따로 없습니다. 아마 현재의 집, 살아온 집들이 인테리어 제약이 많아서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나가지 못한 것 같네요. 조금 다르게 “근사하다”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은 집 전체를 ‘무인양품’으로 꾸며보는 것입니다. 가구가 전체적으로 높지 않고 대부분 나무라 차분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한편에 나무로 된 1인용 소파가 있는 것 말이죠. 식물도 함께 있어야 하고요. 또 다른 하나는 디터람스 집 같은 깔끔하면서 정돈 잘 된 인테리어입니다. 책을 쉽게 볼 수 있는 선반, 매일 아침 청소가 된 것 같은 비주얼 말이죠. 저 두 집에 제가 어울릴지는 미지수지만 공간이 어지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공통된 부분이네요.
또 최근 향에 빠져서 그런지 인테리어보다 •향도 인테리어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관을 열었을 때 ‘향’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향으로 사람이 기억되는 것이 저에게는 멋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솝 룸 스프레이를 당근으로 사봤는데 집이 산뜻해지더라고요. 언제 뿌렸는지 모를 정도로 향이 금방 사라져서 아쉽지만요. 진영씨는 어떤가요?
이: 말씀하신 두 가지가 꿈꾸는 인테리어 같아 보이네요. 나무 가구들로 꾸며낸 인테리어와 화이트톤의 깔끔한 인테리어. 궂은 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통일된 포인트군요.
저는 사는 사람의 정서가 잘 느껴지고, 그 사람의 살아간 때가 쌓여서 자연스러운 모양이 되는 것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물론 그 속에도 규칙이 필요합니다. 깔끔하고 차가운 느낌을 지닌 미드센추리와 나무 가구가 한데 모였을 때 쉽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요.
저의 집은 나무의 따뜻함이 좋아서 집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메인 가구는 나무 계열로, 반려인이 선호하는 원색 계열은 나무가 아닌 차가운 소재로 정해 포인트로 주고 있는데요. 둘의 간극과 어울림을 위해서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컨셉과 구색에 맞춰서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보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 여행에서 사 온 것, 눈에 밟혀서 몇 년 뒤이든 끝내 결국 사고만 것,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인테리어는 한 번에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지만, 한 번에 완성되긴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그 형태가 보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인테리어는 진행 중이고 이것이 언제쯤 마음에 드는 감상으로 남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적어도 중년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집 안에 들어설 때 나는 향도 손님과 집주인의 인상에 프레시함을 가져다주는 좋은 인테리어죠. 그렇지만 거슬리지는 않을 정도의 은은한 향을 오랫동안 나게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만큼 고유의 향이 나려 면 한 가지로 되는 것 같지 않고, 향초, 룸 스프레이, 방향제 등 여러 형태로 동원해야 특유의 향을 풍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숍이나 카페를 갔을 때 하루 종일 그 향만 느껴지는 것처럼요.
장: 하나씩 채워져 가는 집을 볼 때마다 기쁨이 더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한 번씩 이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 아이템을 사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의 집이 아닌 완성된 집에서 더 빛날 것 같지만 꼭 지금 사고 싶은 아이템 같은 거 말이죠.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 꿈꾸는 집을 만들어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각자 집에서 나는 향과 분위기가 있듯 음악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요즘은 턴테이블이 비교적 흔해져 TV나 SNS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데요. 우리 집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 또는 우리 집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요?
이: 꼭 사고 싶은 아이템은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면 미리 사두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사고 싶을 때 사라지면 너무 안타깝기 때문에요. 저는 소품 같은 것들이 주인장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아이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액자일 수도 있고, 마그넷일 수도 있고, 상상하는 집을 그려내면서 무언가를 수집하는 일 또한 완성되는 인테리어로 가기 위한 여정 같습니다.
미드의 주인공 너머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냉장고를 보면서 마그넷으로 냉장고 벽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저의 작은 목표거든요. 그래서 국내건 해외이건 꼭 기념품 가게를 들르죠. 스타벅스 컵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턴테이블이 없더라도 내가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의 LP 들을 사서 채우는 것들도요. 저의 집은 LP 플레이어도, CD플레이어도 없지만 마음에 드는 CD가 있으면 사 모으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꼭 마음에 드는 CD플레이어를 샀을 때 첫 곡으로 상상하면서요. 게 중에는 인디밴드들의 CD도, 중경상림의 OST도 있습니다.
집에서는 날마다 플레이리스트 테마가 다르지 않을까요? 보통 작업할 때는 음악이 없는 Casiopea의 연주곡이나, Jazz 그리고 저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나 DJ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곤 합니다. 가끔 틀어놓은 채로 손님을 맞이하면 평소에도 이런 노래를 듣냐, 일부러 이런 노랠 틀어놓는 거냐고 의심하는데 공간과 플레이리스트가 일맥상통한다는 칭찬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장: 집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디테일입니다. 저의 집인 것을 알 수 있는 소품으로는 CD입니다. 작업했던 아티스트들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죠. 벽 한편에 모양과 종류별로 모아놓았습니다. 또 찬장에 각 잡고 정리되어 있는 봉투도 빠질 수 없겠네요. 비닐봉지나 지퍼백들이 고이 접혀 정리되어 있다면 저의 집입니다.
아직은 집에 대해 큰 애정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이자 작업실이 되어 최대한 제 동선에 편리하게만 만들어놨습니다. •월세이기에 이 집은 내 집이 아니고, 언제든지 나갈 수도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지배적• 그렇다 보니 공간에 어울리는 노래보다는 제가 듣고 싶은 노래가 곧, 플레이리스트가 됩니다. 그때마다 꽂힌 노래에 따라 바뀌는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요즘 유튜브에 한 곡 틀어놓으면 자주 들었던 노래들이 알아서 나오잖아요? 항상 나오는 노래는 콜드, 데이식스, 최유리씨입니다. 집에서 제가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진다면 자주 듣는 노래, 좋아하는 향이 어우러진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집에 대한 큰 애정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벽 한편을 채우고 있는 CD들, 각 잡아 접혀 있는 봉지들 그리고 좋아하는 향의 룸 스프레이로 ‘저의 집인 것을 알 수 있다’라는 대목에서 이미 내 취향과 소품으로 가득 찬 인테리어를 지니고 살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