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명작은 결과를 알고 봐도 재밌다”라는 말을 믿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포일러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데요. 진영씨는 어떤 편인가요?
이: 자극적일 것 같은 장면을 앞두고 긴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를 위해 미리 결말을 알아두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어떤 에어백 같은 장치거든요. 그 외에는 스포를 일부러 찾아보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어도 그대로 좋습니다. 모르고 봤을 때 놓치는 것들을 이미 알고 봤을 때 살펴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장: 옆 사람이 소개해 주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마치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재밌습니다.
하나의 소설이 재밌다면 그 소설가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것처럼 나와 스타일이 맞는다면 더욱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습니다.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욱이 그렇습니다. 감독 또는 배우의 역량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많이 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취향을 담은 최애 감독 또는 배우가 있기 마련인데요.
시놉시스가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놓치지 않는 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신세계>를 만든 ‘박훈정’ 감독이죠. 최근에 <귀공자>를 봤고, <대호>도 영화관에서 직접 봤으니까요. 누와르 (특히 피카레스크)에 특화된 감독이지만 <신세계>와 <마녀> 이후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 아쉽긴 합니다. 혹시 구독자분 중에 저와 같은 취향이 있다면 <귀공자>를 꼭 봐주세요. 그리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면 반가울 겁니다.
그리고 ”이 배우는 정말 좋아!”라기 보다는 연기력 좋은 배우는 몇 있습니다. ‘김무열, 강동원, 이정재’ 배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라고 대부분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이 세 배우의 연기를 보면 더듬거린다고나 할까요? 특유의 버벅거리는 맛이 있습니다. 어설퍼 보이는 느낌이요.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2017)에서 김무열의 패기 넘치지만 현장 경험이 없어 겁 많은 3년 차 검사연기, 영화 <악인전> (2019)에서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되는 •김무열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대목• 연기, 강동원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 사형수의 말 없는 눈물. 이정재의 영화 <신세계>(2013)에서 점점 변해가는 자아 그리고 두 개의 선택지에서 끊임없이 방황과 고통받는 연기. 위 장면들로 이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강동원 배우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 역할의 몰입으로 1년 동안 같은 꿈에서 깨는 시간을 겪었다며 유퀴즈에서 얘기하시더군요. 오롯한 나의 입장으로 표현했으니 겪지 않아도 될 감정을 느낀 고통이 실로 어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 (2007), <카모메 식당> (2007), <요시노 이발관> (2009),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2012)를 챙겨봅니다. 그중에는 영화 <안경> (2007)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바닷가에서 보내는 별일 없는 날들과 매일 보여주는 기이한 체조 활동은 어느새 그들의 하루 속에 녹아들어 가 있죠. 코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 배우의 조합은 최상의 콤비이며 절대 강자 같은 인상을 주죠. 실제로도 막역한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코바야시 사토미의 도시적이면서도 편안한 인상과 강단 있는 역할들은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또렷한 대사의 딕션도 그녀가 좋은 배우임을 느껴지게합니다.
또 하나는 <중쇄를찍자!>와 <나기의 휴식>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쿠로키 하루. 귀여운 인상과는 다르게 야무진 연기력을 지녔습니다. 특히 나기의 휴식에서 파마머리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 정도지요.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영화 <패터슨> (2017)을 보면 아담 드라이버의 매력에 빠집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에 영향을 받아 만든 영화라 중간에 시를 읊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때 아담 드라이버의 느릿하고 중저음의 목소리에 처음 입문했달까요? 비록 스타워즈에서의 모습은 아쉽지만, <데드돈다이> (2019), <결혼 이야기> (2019), <아네트> (2021)를 보면 개인적으로 상업영화보다는 발칙한 독립영화에 더 잘 어울립니다.
아담 드라이버의 이야기를 하니 엄태구 배우가 떠오르네요. 허스키한 목소리와 아주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죠. <택시 운전사> (2017)에서 아주 짧게 나오고 우연히 짧은 독립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 (2004)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아주 빵 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33분짜리 영화인데 엄태구 배우의 매력이 잘 드러납니다. 얼마 전 엄태구 배우의 형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에서도 카메오로 코믹한 인상을 주죠.
아담 드라이버와 엄태구의 묘한 공통점은 엉뚱하고 이상하게 느린 것 같은 중저음의 보이스. 그에 빠질 수 없는 오다기리 죠. 그가 나온 작품을 보면 평범한 역할이라곤 하나 없어 웃깁니다. 심지어 최근에 본 <경찰견 올리버, 이 녀석>(2021)에서는 개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골때립니다.
여배우는 배두나 배우도 좋습니다. <플란다스의 개>(2000)와 <공기 인형>(2010)을 봐야지 하고 아직 못 보고 있지만요. 생얼로도 자주 나오는 것을 결심하는 것을 보면 대체로 자연스러운 연기와 있는 그대로가 느껴지는 배우들이 좋습니다.
장: 엄태구 배우 하니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에 나왔었죠. 한국 영화지만 자막 없이 볼 수 없었다는 저의 감상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