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인데 더워요?”
대구 사람이자 구미에서 군생활을 한 내가 여름만 되면 듣는 말이다. 더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한 나는 다른 이들이 볼 때 더위에 강한 사람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면 어김없이 등줄기에 땀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고, “덥지 않은 척해야하나?”라는 생각에 흘러내리는 땀이 버거움을 더한다.
버거운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더위와의 전투를 치뤄야 한다.
여름이 되면 더위라는 공격을 샤워라는 방패로 끊임없이 방어해야 한다. 더위는 쉴 틈 없이 정수리와 이마, 등에 공격을 가하고 나는 방패를 들 새도 없이 땀을 흘려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이 전투는 밤과 낮 상관없이 지속되고, 등줄기에 휘갈긴 땀 모양이 적장에게는 훈장이 되어 전달된다.
두 번째, 모기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모기는 여름밤 공기로 위장해 안팎으로 나를 침투힌다. 손바닥과 에프킬라로 부랴부랴 방어에 나서지만 간지러움이라는 찰과상을 입고만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세 방의 공격을 상체와 하체에 나눠 당했다. 녀석은 날렵하고, 은신을 잘한다. 특히 잠들기 직전, 귓가를 맴돌며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날은 그날의 불침번이 되고 만다.
세 번째, 항복은 없다.
우스갯소리로 “여름의 천국은 은행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여름은 흔히 불지옥이라고 하며, 에어컨이 틀어진 실내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적이다. 항복 선언하면 그을린 피부를 선물로 줄 뿐, 가을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봄이 되면 여름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여름의 절정에 이르면 “빨리 가을이 왔으면.”이라는 모순적인 항복을 표한다. 그러나 여름에게도 장점은 있다. 옷차림새가 가벼워진다. 그러나 삽시간 안에 땀으로 묵직해진 티셔츠를 느낄 수 있다. 채도가 애매한 컬러의 옷을 입는다면 땀구멍의 위치를 만천하에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만다. 축축한 빨래가 바싹 마르는 계절이지만 바싹 말려진 옷을 축축하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과의 전쟁에서도 나는 패배를 하였고, 늘 그렇듯 겨울이라는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버거운 여름을 이길 수는 없지만, 겨울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는 건 바로 음악이다. 여름이라 하면 빠른 템포로 활동적인 음악을 많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 같은 음악을 즐겨 듣는다. 여름밤의 잔잔한 여운을 듣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손성제의 ‘Good bye’ 와 offonoff의 ‘Moon, 12:04am’ 은 느지막한 시간 한강에서 돗자리를 펴고, 열대야가 오기 직전의 바람을 함께 맞이하는 기분이 쏠쏠하다. 반면에 비욘세의 신곡 ‘CUFF IT’은 빠른 템포로 낮과 밤 상관없이 걸음을 빨라지게 하고, 조금이라도 실내에 빠르게 들어가도록 발걸음을 종용하는 경쾌함을 선사한다.
여름 찬성론자는 8월 첫째 주 주말을 다시 회상해보자. 그때의 습도와 햇빛, 흘러내렸던 땀까지 기억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가을을 찾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