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상향의 여정을 위한 이상형이 있으실까요? 이상형의 의미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 합니다.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장희문: 가치관이 비슷하여 같은 여정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오래 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큰 파동 없는 정적인 상태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사이라면 제가 꿈꾸는 이상향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진영씨는 이미 여정을 떠나셨지만, 예전과 지금의 이상형/향이 많이 달라지셨나요? 또, 그것을 위해 특별히 하신 것이 있다면요?
이진영: 의외로 추상적인 답변이시네요. 이상형 질문에서 흔히 답할 수 있는 적당한 키와 수려한 외모 등 외적인 면들은 잠시 제쳐두셨나요? 예전의 이상형은 하얀 피부와 쌍커풀이 없는 대화가 잘 통하는 정도로 귀결시켰던 것 같습니다. 느낌적인 느낌 있잖아요. 시간이 흐르고 여러 인연을 지나오면서 내면을 더 많이 보게 되고 외적인 것들은 부수적인 순서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앞서 말씀하신 가치관의 방향도 중요하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일상을 잘 보낼 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요. 상대방과 대화가 잘 통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잘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돼야 하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선 내가 이상형을 담을 자질이 충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장희문: 외적인 이상형은 20대를 기준으로 떠나보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단발머리에 광대가 살짝 나온 분을 좋아했습니다. 자기만의 옷 스타일이 있으면 더더욱 좋고요. (큰 틀도 좋지만, 양말과 같은 사소한 포인트가 참 좋더라고요. 이것은 지금도 같습니다.) 30대가 되다 보니 외적인 이상형보다는 그 사람의 분위기와 가치관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맞다”라고 할 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조금 더 들어가자면 예의범절을 잘 지키면 더 호감이 가더라고요. 무단횡단을 안 한다거나,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는 등 말이죠.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씀 참 멋집니다. 저 같은 경우는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얕던 깊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알 수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람을 오랫동안 보게 되더라고요.
이진영: 가치관 이야기를 하시니 제가 귀인을 만나는 가치관에 영향을 준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제가 중학생일 때 무렵 본 책에 나온 글인데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한번 풀어봅니다.
첫 번째, A라는 사람은 항상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상대요. ‘왠지 나라면 이 사람의 빛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었을까요? 막상 만남을 시작해 보니 상대는 매일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만 즐기고 결국 자신을 외롭게 두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서 항상 늦은 밤 집에서 술을 드시던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 B라는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속 썩는 일이 생기거나 서로 비난만 하기 바쁜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요. 왜 나에게는 항상 이런 사람만 다가올까? 한탄만 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번 진탕 즐기거나 진지하기 힘든 자리에서 이루어진 만남이 서로를 깊이 알기 힘든 연애를 초래한 것이죠.
이상형도 이상형일 뿐이고, 이상도 이상일뿐이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귀인이 곧 나의 모습이고, 준비된 나와 다가오는 이상형을 알아볼 수 있는 나의 안목이 만났을 때 비로소 이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장희문: 참 진중한 이야기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어떠한 포인트에 따라 성립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낍니다. 저는 영향을 받은 이야기는 없으나,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라는 느낌이 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사랑이던 배려하는 감정이던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가 감정 표현이 적기 때문에 표현이 확실한 분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진영: 원래 본능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에게 이끌린다고 하잖아요.
장희문: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연애 가치관이 아닌, 제 인생의 가치관에 대해 영향을 준 것들이 떠오르네요. 제 행동 중에 친절한 행동은 대부분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누군가를 만날 때 뭐라도 챙겨 가는 마음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귀가하실 때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은 샌드위치라도 항상 사 오셨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일상이 되고 일종의 호감 표시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진영: 귀가하시면서 항상 빈손으로 오지 않으시는 모습은 참 인상 깊네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유년 시절의 환경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인격을 구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상대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어떤 때는 나 자신도 보지 못한 화난 모습이 표출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냥 편안하기도 하고요.
장희문: 꼭 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대에 따라 모습들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상대방의 관심사와 개그 코드를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 말씀을 하시니 예전에 TV에서 누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나네요. 연극을 하려면 평생 연극을 해야 한다고요. 언젠가 진실을 나오게 되어있다고요. 이 말을 생각하니 자기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대가 정말 귀인이자, 이상형이자 이상향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